일본사 -1 (처음부터~ 13세기까지)

한국인이 일본의 문화를 좋아할 수 있지만 일본사를 좋아하기는 쉽지 않다.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역사적 감정이입을 하기에는 피해자의 감정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건에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소수임을 알게 되면 여전히 일본의 역사를 좋아하기는 쉽지 않으나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문화와 일본인들 한명 한명의 역사는 받아들일 수 있다. 이번 글은 일본 역사의 처음부터 13세기까지 간단하게 정리한 글이다.

일본사
Pixabay로부터 입수된 ogamiichiro3님의 이미지 입니다.

 

  1. 다이카 개신
  2. 나라, 헤이안 시대 
  3.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과 발달 

 

1. 일본사 – 다이카 개신

역사의 4대 문명지 중 하나인 중국 문명은 오랜 시간을 거쳐 인류 역사에 거대한 영향을 펼친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정치, 문화, 사회, 경제 등 모든 시스템의 기준이 되었다. 중국인들은 현재도 그들 과거의 역사를 매우 자랑스러워할 만큼 화려한 문명을 이룩한 것은 반박할 수 없다. 일본이 국가다운 시스템을 형성하고 중앙 집권이라는 통치 방식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인 중국 당 왕조의 시스템이다. 우리는 이를 ‘율령’이라 부른다.

당시 한반도에 있었던 통일 신라도 당에 많은 유학생을 보내 선진 문물을 수입하고자 했다. 일본 역시 유학생들이 당에서 활동했고 돌아와 새로운 개혁을 이루는데 이를 다이카 개신이라 부른다. 당시 국왕이 발표한 개혁 칙령을 4가지로 요약하면

첫째, 토지의 국유화 (상징적 의미)

둘째 지방 행정 조직 확립

셋째 반전 수수법 실시

넷째 조세 제도 개혁 (조용조)

일본은 6세기쯤 백제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며 고대 국가로서 발돋움한다. 당시 문화를 아스카 문화라 부르고 다양한 불교 예술 작품들이 남아있다. 이후 7세기에 진행된 다이카 개신으로 당의 율령 체제가 도입되며 국왕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가 형성된다. 다이카 개신의 내용을 살펴보면 토지 국유화를 기반으로 백성들의 경제생활을 안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금을 거둬 국가를 운영한다. 또한 이 과정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국왕의 명령이 지방 구석구석에 미칠 수 있도록 중앙 집권을 강화한다. 이는 중국에서 시행된 제도를 일본의 상황에 맞게 변화해서 받아들인 것으로 일본뿐만 아니라 통일 신라와 베트남 지역에서도 일어난 일이다.

 

2. 나라 시대, 헤이안 시대

토지를 기반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호족들을 견제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도읍을 이동하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다. 일본은 헤이조쿄와 헤이안으로 각각 천도 하며 왕권을 강화하려 노력했다. 먼저 헤이조쿄로 천도한 시기를 나라 시대라고 한다. 이때 ‘일본’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고사기’, ‘일본서기’ 같은 역사 기록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역사서는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보다 왕권의 정당성, 신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으로 역사적 사실로 확인하기 힘든 내용이 담겨있다. 다이카 개신 이후 견당사를 통해 율령을 받아들이며 유교식 통치 방식을 적용하지만, 아직까지 국가를 운영하는 기본 이데올로기는 불교였다.

8세기 이후 왕실과 귀족 세력의 대립이 격심해지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한 번 더 천도를 감행한다. 이번에는 헤이안으로 옮기게 되는데 이때를 ‘헤이안 시대’라고 한다. 천도를 할 때 급격하게 위치를 옮기지는 않는다. 나라, 헤이안 모두 현재 일본 지도로 확인했을 때 오사카를 중심으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위치한다. 사실 일본사는 일본 영토 중 아래쪽에서 중심이 되어 일어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쨌든 헤이안 시대에는 ‘가나’가 만들어지며 일본 특유의 글자가 형성되었고 9세기 말에 더 이상 견당사를 파견하지 않게 되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를 수입하기보다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발달하게 된다. 이를 국풍 문화라고 하는데 우리가 일본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것들은 보통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와카’, ‘겐지 이야기’ 등이 당신에 만들어졌으며 일본 고유의 주택과 관복이 형태를 갖추었다.

 

3.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과 발달

지방 호족 세력들의 경제력이 강해지고 왕위 계승에 관한 귀족들을 정쟁이 격화되면서 중앙 집권이 약화되었다. 이때 각 지역의 호족들은 본인의 경제력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사병을 운영하기 시작하는데 이들이 조직화되면서 무사 계급이 만들어진다. 무사 계급은 귀족들 사이에 일어나는 왕위 계승 분쟁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그 권력이 강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무사 계급이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게 되는데 이를 막부라고 한다.

최초의 막부는 1192년에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수립한 가마쿠라 막부였다. 가마쿠라 막부는 현재 도쿄에 가까운 위치로 당시 수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정치적 권력의 독자성을 확보하고 명분을 만들었다. 이에 일본의 왕은 실질적인 정치권력을 상실하고 상징적인 의미로 남았으며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쇼군이 되면서 정치 운영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가마쿠라 막부는 13세기 몽골의 침략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피해를 입게 되고 무사 계급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제공하지 못하여 결국 무너지게 된다.

★ 일본 현대사를 알고 싶다면 아랫글을 참고하세요.

일본의 군국주의 – 쇼와천황(1926-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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